우리 한국의 무속신으로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등장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퍽 흥미롭게 생각했다. 서울 동대문 밖 40대의 한 보살이
맥아더 장군의 靈力(영력)을 받아 神堂(신당)을 만들고 양담배로 공양한 것이 양담배 단속반에 걸려 들추어진 것이다.
이 외래신에게 바친 제물이 선글라스, 쌍안경, 곰방대 인것은 이해가 가지만 미국사람이기에 국산담배 아닌 양담배로 공양한다는 발상이
재미있다.
맥아더 장군을 신격화한 것은 기발하지만 그러할 수 있는 우리 한국인의 신앙적 특성은 역사적으로 보아 그다지 새삼스러운 것은 못 된다.
우리 옛 한국인은 원한 품고 죽은 사람을 신격화하여 그 원한을 공감하는 것이 한국신앙의 두드러진 특성이었다. 신하에게 살해당한 공민왕, 고려의 사직을 지키려다 살해당한 최영장군, 억울하게 여생을 산 단종비 송씨, 젊은 나이에 모해당한 남이장군이 신격화 되어 신앙된
것 등이 그것이다.
한국사람 입장에서 보면 맥아더 장군도 그의 뜻을 못 이루고 해직당한 것이 원한으로서 공감됨직하다.
절에 가면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과 전통 무속신앙인 산신각과 도교에서 비롯된 칠성각이 나란히 평화공존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.
우리나라에 그토록 많이 명멸했던 신흥종교의 거의 대부분이 유불선의 절충종교였던 것도 그렇다.
일제 때 서울 무당조합의 대표들이 기독교 선교사들로부터 교리를 듣고 나서 "예수 그리스도는 훌륭한 가르침을 내려주신 것 같습니다.
우리들은 조속히 산신령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모시고 우리에게 이따금 강신해줄 것을 빌겠습니다."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.
선교사들이 얼마나 기겁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.
이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비단 이단일지라도 존재가치를 인정 수용하고 절충하려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의 나타남이랄 수 있다.
하물며 국제화시대인지라 별반 심리적 갈등을 느끼지 않고 맥아더 장군을 무속신으로 신격화 할 수 있었음직하다.
다만 맥아더 장군이 저승에서 줄담배 피우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가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.